데이빗 노 - 약력
호주 태생의 국제적인 남자, "데이빗 노"는 1993년 물리요법 학위 과정을 밟는 도중에 영화 산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학위 과정을 마치는 동안 그는 영화 산업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고 은막의 스타 케이트 블랑쉐과 멜 깁슨의 모교인 호주 국립 연극 예술 학교 (NIDA)를 포함하여 여러 교육기관에서 수년 동안 공부하였다. 호주의 다른 여러 배우들처럼, 다양한 TV 시리즈에서 단역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지만 그의 틈새 영역은 탁월한 신체적 재능이었다.
그와 같은 유전적 배경을 보면 놀라울 것이 없다. 데이빗의 부모님들은 두분 모두 무술의 달인이며 각각 자신의 능력으로 사범의 위치에 오른 분들이다. 그의 아버지, 노계형씨는 1965년 호주에 태권도를 보급한 장본인이고, 그의 어머니, 로빈 마치멘트는 호주 최초의 여성 유단자이면서 현재까지도 호주에서 여성 최고의 랭킹을 보유하고 있다. 데이빗 자신도 유도(1992)와 태권도(1995) 호주국가대표로 활동하였다. 그의 무술 능력은 그가 성룡의 "나이스 가이"나 멜깁슨과 이연걸이 제작한 "인빈서블"; "매트릭스 리로디드"; "엔터 더 메트릭스" (비디오 게임) 같이 업계 최고의 영화제작인들 옆에서 함께 작업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술 배우로써, 데이빗은 스턴트를 더욱 탐구하여 스턴트맨으로써의 자질을 더 하게 되었고, 신체 제어, 고도, 불, 동물, 물, 자동차 등을 포함하여 스턴트라는 대담한 작업의 모든 요소를 경험하였다. 그 중에서도 그의 전문분야는 격투, 와이어액션, 정밀한 스턴트 운전이 된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준수한 외모와 대범한 신체적 기술, 무용수와 체조가로부터 훈련 받은 품위로운 움직임은 기존의 야수 같은 스턴트맨들 중에서 그를 돋보이게 만든다.
1997년, 데이빗은 척박한 호주의 장르 영화 분야의 부흥을 위해 액션 영화 제작자 브렌트 휴톤과 합심하였다. "격렬한 영화들 (Furious Films)" 이라는 이름 아래, 데이빗은 호주 영화 프로듀서 협회(SPAA)에서 열리는 애뉴얼 피칭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다. 이는 호주의 저명한 제작사와 배급회사들의 관심을 자극하였다. 장르 영화 작가로서의 그들의 재능은 이 회사들을 통해 삽시간에 발탁되었고, 몇몇 프로젝트들은 깐느 필름 마켓에 진출하였다.
장편영화를 개발 하는 동안, 데이빗은 한국 광고 산업에서 라인프로듀서업무의 개척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운 좋게도, 데이빗의 첫 번째 광고는 성룡이 출연하는 4백 50만 달러 규모였다. 한국 프로젝트의 중계자 역할로써 그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여 그는 지속적으로 몇몇 한국의 최고의 감독들및 배우들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였다. "태풍"과 "늑대의 유혹"과 같은 영화들; "미안하다 사랑한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태양의 여자"와 같은 TV 드라마,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송혜교와 현빈 주연의 새로운 히트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해외 부분의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이런 TV드라마에서 몇 차례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의 TV 광고 작업에는 이효리, 에릭, 보아가 출연하는 "애니모션”, “애니클럽”, “애니밴드" 시리즈와 같은 거대한 광고 캠페인이 포함된다. 그는 또한 "대한생명 보험", "KTF" 그리고 "한국 타이어"와 같은 광고에는 직접 출연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르네상스 맨인 그는 업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지금까지 배우로써, 제작자로써, 스턴트맨으로써, 액션 감독으로써 그의 능력을 유지하고 계발하였다. 영화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는, 자주 이러한 여러 가지 역할들을 한 프로젝트에서 수행해 내어 왔다. 이렇게 일인다역으로 한 프로젝트에 일한다는 것은 믿기 힘들 수 있지만, 데이빗아 가진 능력들의 조합은 독특한 것으로 여기에 영화제작 예술에 대한 근면함이 더해져 그는 다방면에 능통하게 되었다.
2005년에 데이빗은 다시 이야기꾼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엔 감독으로써였다. 그의 2006년 작인 "포지드 (Forged – ‘연마된’ 이라는 뜻)"는 그의 모든 다양한 능력들의 집결체로, 장르영화에 있어 독특한 스타일과 시점이 스며 나온다.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국제 영화제에 상영되었고, 최우수 감독; 최우수 작품, 최우수 의상, 최우수 음악, 그리고 최고 촬영상까지, 다수의 상을 받게 되었다. 마치 감독의 풍부한 재능의 다양한 면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한국 엔터테인멘트 업계의 대다수가 국제적으로 인정 받기 위해 헐리우드로 이동하는 이 시기에, 데이빗 노는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성공한 최초의 한국인 중 한 명으로 한국 영화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데에 그의 재능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한국 영화의 후원자가 되어 한국과 헐리우드의 새로운 합작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